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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인물열전] 기드온, 300 용사 이끈 '믿음의 수장'

역사에 300대 100만의 전투가 있었다. 이 역사적 전투는 영화 '300'으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구약성서의 아하수에로)가 이끄는 100만 대군을 맞아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이끄는 300명의 용사들이 테살리아 지방의 테르모필레 협곡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하여 사활을 건 전투를 벌였다. 결과는? 물론 300명 스파르타 용사들의 장렬한 전사로 끝났지만 이 전투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단합할 시간과 용기를 주었고 결국 그 이후의 전투에서 그리스가 승리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페르시아 용사 300명이 수행한 전투보다 700년 앞선 이스라엘 300 용사에 관한 이야기가 구약성서에 나온다. 이들 300 용사를 이끈 수장(首長)은 사사였던 기드온이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 300 용사로 13만5000명의 미디안과 아라비아 연합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기드온은 농사짓던 중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서 이스라엘 민족을 압제하던 미디안 족속과의 전쟁에 나서게 된다. 하나님이 주신 지략으로 기드온은 그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든 3만2000명 중에서 전쟁을 두려워하는 자와 분별력이 떨어지는 자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결국 남은 300명으로 미디안과의 전쟁을 치르게 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는 표현이리라! 기드온이 이끄는 이스라엘 300 용사가 이 전투에서 사용한 것은 무기라고도 할 수 없는 나팔과 횃불과 함성과 항아리였다. 그들은 미디안 군대가 주둔한 진지를 야간에 포위하고서 밤 10시경 나팔을 불고 사방에서 항아리를 깨뜨리고 함성을 올렸다. 그 소리에 혼비백산한 미디안 군대는 서로를 죽고 죽이면서 지리멸렬하고 말았으니 칼 한 번 쓰지 않고 단 한 명도 전사하지 않은 채 거둔 승리였다. 어떻게 그러한 대승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기드온의 믿음과 이스라엘 300명 용사의 순종이었다. 숱한 인간영웅들을 기리는 그리스 영웅담론과는 달리 구약성서는 철저히 하나님이 전쟁과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드러낸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 치듯 하리라."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하신 말씀이다. 1대 450. 숫자는 숫자일 뿐 하나님은 때로 인간의 숫자놀음을 희화화(戱畵化)하신다.

2010-04-27

[성서인물열전] 아간, 재앙을 자초한 자

공자의 자손인 자사(子思)가 쓴 '중용과 천명'과 '대학'에 '신독'(愼獨)이라는 말이 나온다. '신독'이란 다른 사람이 보거나 듣는 사람이 없는 곳에 혼자 있는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를 뜻한다. 구약시대에 탐욕으로 눈이 먼 나머지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의 죄악을 숨기려 했던 이가 있었다. '신독'을 삶의 철칙으로 삼았더라면 그러한 재앙을 자초하지는 않았을 것을.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구약성서의 아간이다. 40년 광야 생활 끝에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의 인도 아래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가나안은 미답(未踏)의 땅이 아니었다. 이미 그곳에는 일곱 족속이 정착해 있었으니 이스라엘 백성은 이들과 힘겨운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 첫 번째 전투의 대상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관문에 위치한 여리고 성이었다. 이 여리고 성 공략에 앞서 하나님은 한 가지 절대적인 명령을 내리셨다. 그것은 여리고 성의 모든 전리품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이기에 모조리 불살라 첫 승리의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라는 엄명이었다. 그러나 아간은 그 전리품 가운데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50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훔쳐 자신의 장막으로 가져가 땅 속에 몰래 감추어 두었다. 탐욕에 눈 먼 아간은 '신독'을 저버린 채 하나님의 물건을 훔친 것이다. 그것을 본 사람이 없었기에 성공한 것 같았다. 그러나 불꽃같은 눈으로 세상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눈을 가릴 수는 없는 법. 크고 견고한 성읍 여리고를 쉽게 무너뜨린 이스라엘은 근처 작은 성읍 아이(Ai)쯤은 쉽게 무너뜨릴 줄 알았지만 웬걸 이스라엘은 보기 좋게 참패를 당하였다. 참담한 패배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비탄에 잠겨 있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물건이 도적맞은 사실을 알려주었고 제비를 뽑아 범인을 찾아내었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아간과 그의 가족은 아골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였다. 경건은 '하나님 경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간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장막 안에서도 아간이 하나님의 현존을 의식했다면 그러한 파국을 맞이하였을까? 그러기에 '신독'은 참된 지혜의 근본이 되는 하나님 경외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2010-04-20

[성서인물열전] 미리암, '지혜 vs 교만' 두 얼굴의 여선지자

이스라엘이 모세의 선도로 이집트의 억압받던 노예 신분에서 탈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가는 과정에서 활동했던 최초의 여선지자가 미리암이었다. 신약시대 헬라어권에서 흔히 불리던 이름인 '마리아'의 히브리식 이름이 '미리암'이다. 미리암은 모세와 그의 형 아론의 누이이기도 했다. 미리암은 바짝 추격해 오는 이집트 파라오(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을 홍해에서 일시에 수장시키신 하나님을 기리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송가(승전가)를 지어 불렀다.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여인들을 지휘하여 소고를 잡고 춤추며 다음과 같이 선창하였다.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히브리 노예들의 급속한 인구팽창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그들의 남자아이들이 태어나는 족족 살해하였다. 미리암은 자신의 남동생이었던 어린 모세를 이러한 살육의 현장에서 구해 내려고 그를 갈대상자 속에 넣고 나일강에 띄워 보내었다. 그 갈대상자 안에서 어린 모세를 발견한 이집트의 공주에게 그의 양육을 위해 생모를 유모로 주선할 만큼 미리암은 수완이 뛰어나고 지혜로웠던 여인이었다. 아론과 함께 미리암은 이집트를 탈출한 후 광야에서 구스(현재의 에티오피아) 여인을 취한 모세를 비방하였고 그의 영도력에 이의를 제기하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미리암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서 천형인 나병에 걸려 살이 거반 썩게 되나 모세의 기도와 중재로 고침을 받았다. 모세의 최측근으로서 지근거리에서 그를 도운 여인이 미리암이었다. 그런 미리암이 자신의 판단을 앞세워 모세의 행위를 비방한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살만큼 경솔한 행동이었다. 자신의 지혜로 모세를 살리기도 했지만 그 지혜의 교만함으로 그를 정죄하기도 하였다. 분별력 없는 지혜가 자칫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나균(癩菌)같은 해악을 끼칠 수 있다. 다른 이들을 판단하기 전에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새겨볼 일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보다 내 눈 속의 '들보'를 스스로 찾으려 하는 겸허한 태도가 공동체를 살린다.

2010-04-13

[성서인물열전] 가롯 유다, 배신의 입맞춤을 한 제자

예수께서 택한 12제자 가운데 입 맞추는 것을 신호로 그를 대적자들에게 태연히 팔아넘긴 제자가 있었다. 2000년 기독교 역사 속에서 그의 이름은 배신자 혹은 배도자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12제자 모두가 배신자가 아니던가. 예수께서 그들을 가장 필요로 하던 때에 그들은 한결같이 현장에서 도망가거나 그가 자신들의 스승이심을 부인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가롯 유다는 배신을 넘어서 보다 구체적으로 그 일을 실행에 옮겼으니 그것은 스승 예수님을 은 30개를 받고서 제사장과 장로들에게 팔았다는 점이다. 신약성서는 그가 왜 예수님을 배반했는지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 예수님 당시 스스로를 메시아라 하는 이들이 많았다. 이스라엘의 주권과 영토 회복을 외치면서 요단강을 건너 광야로 민중들을 이끌고 가다가 로마군대에 의해 괴멸된 사건이 종종 발생하였다. 아마도 가롯 유다는 다분히 민족주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메시아사상에 사로잡힌 나머지 예수님을 그런 종류의 메시아로 인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가 결국 예수님으로부터 등을 돌린 것은 자신이 바란 메시아상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은 너무나 멀었기 때문이리라. 이 땅에서의 마지막이 가까움을 아신 예수님은 11제자를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가셨다. 그 현장에 유다의 선도로 제사장과 장로들이 보낸 많은 사람들이 횃불로 길 밝히며 검과 몽둥이를 들고 당도하였다. 한밤중인지라 가롯 유다는 입맞춤으로 누가 예수님인지를 알려 주었다. 다음 날 정신을 차린 가롯 유다는 죄 없는 스승 판 것을 번민하여 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은 30을 돌려주면서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고 외쳤다. 제사장들은 그에게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고 대꾸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은을 성소에 던져놓고 나가서 목매어 죽었다. 참으로 불행한 죽음이었다. 그날 밤 가롯 유다가 예수께 한 그 입맞춤이 예수님과 자신의 죽음의 전주곡이 될 줄이야. 한 죽음은 인류를 위한 의로운 죽음이요 다른 한 죽음은 지극히 이기적인 행동이 낳은 불행한 죽음이었다. 이렇듯 우리에게는 늘 두 가지 다른 방식의 죽음이 놓여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것이 이 세상을 떠나기 전 우리가 숙고해야할 화두(話頭)가 아니겠는가?

2010-04-06

[성서인물열전] 나단, 권력에 직언한 선지자

역사적으로 망조가 든 나라들의 공통점은 직언(直言)하는 충신은 멀리하고 권력에 빌붙어 아첨과 곡언(曲言)하는 간신배를 등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곡언아세(曲言阿世)가 판을 치는 경우 기강이 문란해져 결국 그 나라는 뿌리째 썩은 고목처럼 쓰러지고 만다. 더구나 최고 권력자 앞에서 그의 실책과 범죄행위를 적나라하게 직언하면서 회개를 요청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리라. 어쩌면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지 않은가? 다윗 왕 때에 이름의 뜻이 '양심'인 한 선지자가 있었다. 그는 다윗 왕을 찾아와 뜬금없이 한 비유를 들었다. 그 비유의 내용은 이러하다. 많은 양과 소를 소유한 부자가 자기의 것은 두고 이웃의 가난한 사람이 딸과 같이 애지중지 기르는 하나뿐인 암양을 빼앗아 손님을 대접했다는 것이다. 그 비유를 들은 다윗은 격노하면서 그런 놈은 죽어 마땅하다고 소리쳤다. 그 때 그는 역사에 길이 회자될 직언을 다윗에게 하였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 이렇듯 지혜롭게 비유로 접근해서 최고 권력자인 다윗의 참회를 이끌었던 이는 그 시대의 '양심'이었던 선지자 나단이었다. 그 비유 속의 악한 부자가 다름 아닌 자신이라는 깨달음 앞에서 다윗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나단의 직언은 죄에 도취된 채 하나님에게서 떠난 다윗의 양심을 흔들어 깨웠다. 나단의 비유는 밧세바와 통정(通情)하고 그녀의 남편으로서 충신이었던 우리아를 격전지에 보내어 우연을 가장한 죽음으로 몰아넣은 다윗의 죄를 지적하는 하늘의 소리였다. 인간사 속에서 하늘의 소리를 전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그 시대의 '양심'은 얼마나 많았는가? 최고의 권력으로 세상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다윗의 면전에서 그의 죄악을 여실히 지적한 나단이 있었기에 다윗과 이스라엘 민족은 파멸을 면할 수 있었다. 직언이 사라지고 곡언이 난무할 때 사람들의 양심은 서서히 마비되고 옳고 그름의 기준도 사라지고 선을 행하려 하는 의지도 무색하게 된다. 굽은 소리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도 굽게 만든다. 나단의 직언이 굽어진 왕도(王道)를 펴게 한 것처럼 곧은 소리에 귀 기울이고 굽은 소리를 멀리하자. "구원은 들음에서 난다" 하지 않았던가.

2010-03-30

[성서인물열전] 사라, 역사를 바꾼 여인

족장 아브라함과 그의 아름다운 이복누이이자 아내였던 사라에게는 깊은 시름이 있었다. 대를 이을 남자 아이가 없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고대사회가 그렇듯 여인의 가치는 가문의 대를 이어줄 남아(男兒) 생산에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사라는 남편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젊은 여종인 하갈과 동침할 것을 권하여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얻게 하였다. 이것이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중동지역 분쟁의 불씨가 될 줄이야. 그로부터 다시 13년의 세월이 흘러 아브라함의 나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다음 해에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러나 아흔 살이 되어 이미 경수(經水)가 끊어진 사라의 메마른 몸에서 생명 잉태가 가능하긴 한 걸까? 그러나 1년이 지난 뒤 그 예언과 같은 말씀은 현실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아브라함의 적자인 이삭('웃음'이라는 뜻)이 태어났으니 이때부터 사라와 하갈 사이에는 시기와 질투의 불꽃 튀는 갈등이 일어났다. 비록 사라의 몸종이었지만 사라의 요청에 의해 떡하니 대를 이을 남자 아이를 낳고서 하갈은 안주인 노릇을 하려 하지 않았을까. 그렇더라도 여종의 아이 또한 주인의 아이인 것을. 이렇듯 세 사람 사이에 펼쳐지는 복잡 미묘한 분란과 갈등으로 아브라함의 장막은 편안한 날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사라의 분노가 폭발하는 사건이 생겼으니 이스마엘이 동생 이삭을 데리고 놀리는 것을 사라가 본 것이다. 이삭을 보호하려는 모성애 때문이었을까 불같이 화를 내면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당장 그 여종과 그 아들을 쫓아내라고 닦달을 하자 아브라함은 하는 수 없이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하갈의 어깨에 메어 주고 이스마엘과 함께 광야로 내어 보내었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벌어진 이 두 여인의 갈등이 현재까지 중동 분쟁의 단초가 되었다. 이스라엘의 적자주의와 이스라엘을 제외한 여러 아랍국가의 장자주의에 근거하여 중동지역의 패권을 놓고 두 진영이 서로 격돌하고 있으니 그 분쟁의 뿌리는 너무나 깊이 내렸다. 북극에서 퍼덕거리는 나비의 날개 짓이 남극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나비 효과처럼 아브라함의 실수와 두 여인 사이의 갈등이 3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를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그러니 자신의 언행을 늘 하나님과 역사 앞에 두고 물을 수밖에.

2010-03-23

[성서인물열전] 세례자 요한, 예수보다 앞서 온 선구자

해가 떠오르면 달이 기울듯 예수 그리스도 시대의 도래와 함께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서 강한 빛을 발하고서 역사의 뒤안길로 황급히 스러져 간 한 예언자의 일성(一聲)이 들린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세례자 요한의 외침이다. 그는 광야의 사람답게 약대털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띠었으며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꿀)을 먹으면서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옛 시대(구약)와 새 시대(신약)의 분기점에서 새 시대가 동터 오르자 예수 그리스도를 새 시대의 구원자임을 공포하면서 자신의 죽음으로 옛 시대의 종언(終焉)을 고하였다. 세례자 요한은 유대의 사제였던 스가랴와 아론의 계보를 잇는 어머니 엘리사벳이 늘그막에 낳은 아들이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의 공생활의 시작은 세례자 요한에게서 받은 세례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당시 유대인들의 메시아사상에 따르면 종말의 날 심판하러 메시아(혹은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반드시 엘리야가 먼저 도래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메시아는 이미 이 땅에 와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그 분인 줄 알지 못하였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메시아)의 등장에 앞서 그의 길을 예비하러 온 엘리야였던 셈이다. 세례자 요한은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있듯 진노가 임박하였으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추상같은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그의 예언자적 선포는 분봉왕 헤롯의 악행 또한 좌시하지 않았다. 헤롯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데 대해 요한은 그 부당함을 비난하였다. 그 결과 헤로디아와 그녀의 딸 살로메의 사주로 인해 요한은 결국 참수 당하였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을 이렇게 평하였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세례자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 세례자 요한은 깊은 영적 침체기에 예수님과 동시대에 등장해 세례를 베풀면서 강력한 회개와 쇄신운동을 펼침으로써 유다 땅 전역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선 굵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새 생명 탄생에 산고(産苦)가 따르듯 새 시대의 시작은 쉬 오지 않았다. 새 시대의 시작은 희생 없이는 오지 않는가? 새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서 옛 시대와 함께 역사 속으로 총총히 사라진 세례자 요한이 여인이 낳은 자 가운데 가장 큰 이가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2010-03-16

[성서인물열전] 예레미야, 눈물로 예언 쓴 '하나님의 사랑'

수줍음이 많고 마음이 약한 사람. 그러나 하늘의 눈으로 세상을 냉철히 바라보고 하늘의 소리로 민족을 준엄하게 일갈(一喝)했던 하나님의 사람.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단된 이후 유다 역사의 가장 극심한 격동기 40년 동안 활동한 위대한 예언자. 요시야 왕 13년에 예언자로 부름 받아 주전 586년 예루살렘이 강대국 바빌로니아에 의해 함락당할 때까지 민족의 잘못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동족들을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였던 하나님의 사람. 그가 예레미야다. 당시의 사악한 왕 여호야긴 주위에는 그가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하는 거짓 선지자인 '예스맨'들로 둘러싸여져 있었다. 예레미야는 그들 거짓 예언자들과 당국과도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목이 곧은 백성을 향해 내지른 그 쓴소리의 대가는 여러 번의 옥고였고 심지어 그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해를 경험하는 것이었다. 다가오는 큰 위기로부터 민족을 구해낼 수만 있다면 그러한 고난도 감수할 수 있으련만 그가 눈물로 외친 그의 예언적 절규는 허공을 맴돌 뿐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동족들의 마음에 공명되지는 못하였다. 그런 동족들을 향해 예레미야는 외친다.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유대의 지경을 넘어오는 바빌로니아 군대의 말발굽 소리와 도륙당하는 동족들의 비명 소리가 그의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는 한 성전의 무너짐과 자녀의 죽임 당함과 전답의 황폐는 불 보듯 뻔한데 유대 백성들은 하나님과 그 계명을 잊은 지 오래되었다. 예레미야의 눈에는 장차 초래될 민족적 재난의 단초가 강대국 바빌로니아의 야욕이라기보다는 죄악으로 오염된 백성들의 황폐한 마음에 있었다. 죄악의 수풀로 우거진 그 유대 백성의 마음이 국가적 재앙을 초래한단다. 그러기에 예레미야는 그의 닉네임('우는 선지자')처럼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늘의 소리와 전쟁의 붉은 회오리가 불어올 땅의 절규 사이에서 하나님의 선지자이면서도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하는 그의 무력함 때문에 그는 고뇌에 찬 아픈 눈물을 흘렸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가 쏟아낸 쓴소리는 그의 심장이 파열될 만큼의 동통(疼痛)이 수반되고 애잔한 눈물이 뒤범벅된 하늘의 소리였다. 그 소리가 희망인 것을.

2010-03-09

[성서인물열전] 엘리사벳, 가장 큰 자를 낳은 석녀

유대의 사제직에 있던 사가랴를 남편으로 둔 엘리사벳은 최초의 제사장이었던 뼈대있는 아론 가문의 여인이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의 규례(規例)와 계명(誡命)대로 살아가는 흠이 없는 사람으로 하나님께도 의인(義人)이라 칭함 받았다. 그러나 엘리사벳에게는 큰 시름이 있었으니 아이를 잉태치 못한 석녀(石女)라는 평생 그녀를 짓눌러온 수치스러운 딱지였다. 자신이 낳은 남자아이로 여성의 가치가 매겨지던 당시 유대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엘리사벳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으리라. 그러다가 폐경기를 넘겼을 법한 엘리사벳의 닫힌 태(胎)가 열리게 된다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된다. 사가랴는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려 들어간 성소 안 분향단(焚香壇) 우편에 서있는 하나님의 사자와 만나게 된다. 하나님의 사자는 그에게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게 될 것인데 그 아들의 이름을 요한(John)이라 지으라고 지시한다. 늘그막에 아이라니! 사가랴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생물학적으로 출산할 수 없는 두 부부의 나이를 근거로 믿을 수 없다는 듯 "무엇을 보고 그런 일을 믿으라는 말씀입니까?"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그 불신앙의 결과 사가랴는 한동안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신약성서는 세례 요한을 인류역사상 여인이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 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 앞서 와서 그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로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 나란히 등장하여 예수님과 함께 도래할 천국을 선포했던 선 굵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런 '큰 자'를 잉태하기 위해 농익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하나님의 때는 인간의 때와는 다른 법. 석녀였던 엘리사벳의 태가 열린 사건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새 시대가 동텄음을 알리는 여명(黎明)과도 같았다. 그러기에 예언자 이사야는 구원이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간의 불임(不姙)과 결부시켜 다음과 같이 외친다. "기뻐하라 아이 못 낳는 불임의 여인아! 환성을 지르며 외쳐라 산고를 모르는 여인아! 과연 외로운 여인의 자손들이 남편 가진 여인의 자손들보다 더 많으리라"(이사야 54.1). 이렇듯 경수(經水)가 끊어진 한 여인의 태를 여신 하나님은 우리네 인간사 속에서 희망이 사라진 불모지에 '불가능한 가능성(impossible possibility)'의 싹을 틔우신다.

2010-03-02

[성서인물열전] 헤롯 대왕, 폭정-탐미 두얼굴의 통치자

헤롯 대왕이 신약성서의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둘러싼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서이다. 한 별을 따라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에게 경배하러 왔다고 하자 자신의 왕권을 잃을까봐 헤롯은 두 살 이하의 유아들을 무참히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결국 그는 병적인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가장 사랑하였던 아내 미리암과 장모를 살해하였고 무수한 신하들과 세 명의 아들들도 처형하였다. 헤롯 대왕에 대해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그의 아들들보다는 차라리 헤롯의 돼지들이 낫다"는 촌평을 하였다고 하니 그의 광기서린 잔인함은 널리 회자된 가십거리였던 모양이다. 헤롯 대왕은 이두매(혹은 에돔) 출신이었던 안티파터와 나바테아 왕국의 페트라의 공주 키프로스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었다. 아버지 안티파터가 로마의 유력자들과 좋은 친분을 유지한 덕에 헤롯 대왕은 25살 되던 때 갈릴리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그 이후 로마 원로원의 지지로 유대인의 왕으로 등극하여 34년간을 다스렸다. 끊임없는 의심 모함과 처형으로 얼룩졌던 헤롯 대왕의 가정사는 기원전 4년 봄에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그가 죽음으로써 일단락되었다. 헤롯 대왕은 뛰어난 외교술과 정치 감각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둘러싼 격동의 정국을 헤쳐 나갔지만 자신의 통치에 반대하는 자들을 무참히 살해한 무자비한 정치가였다. 또한 로마의 건축술로 그가 다스렸던 전 영토를 치장한 뛰어난 건축가였지만 그 영토 안에 경찰국가를 조성하여 살벌한 공포정치를 실행했던 인물이었다. 헤롯 대왕은 곳곳에 궁궐 극장 원형경기장 요새(특히 마사다)를 건축하였고 솔로몬 시대의 영광을 추억하며 솔로몬 성전의 2배 크기(길이 457미터 폭 297미터)로 화려하게 지은 예루살렘 성전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건축물 가운데 하나였다.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의 통치자로서 이방인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고자 한 헤롯의 정치적 야망이 깃든 원대한 건축 프로젝트였다. 복음서에서 묘사된 예수님의 반-도시적 정서는 아마도 헤롯 대왕이 광기와 야망으로 쌓아올린 도시에 대한 예수님의 무언(無言)의 반응이었으리라.

2010-02-23

[성서인물열전] 압살롬, 하나님 없는 권력의 헛됨

조선 태조 이성계의 창업 과정에서 일어난 왕자들의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골육상쟁을 왕자의 난이라 하는데 구약성서에는 이보다 더 치욕스럽고 비극적인 왕자의 난을 기록해 놓고 있다. 다윗 왕조 후반을 피로 얼룩지게 한 살해 왕위 찬탈을 위한 모반 그리고 근친상간의 중심인물은 압살롬이었다. 압살롬은 누구와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준수한 용모로 인하여 그 이름을 떨친 현대판 꽃미남이었다. 다윗 왕궁을 둘러싼 골육상쟁의 피비린내 나는 비극의 전말은 이러하다. 미모가 뛰어난 자신의 동복 누이였던 다말을 이복 맏형인 암논이 능욕하자 2년간 복수의 칼을 갈아온 압살롬은 잔치를 배설하고서 모든 왕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암논을 살해하였다. 압살롬은 다윗의 눈을 피해 외가가 있는 그술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3년을 보내다가 다윗의 군대장관이었던 요압의 중재로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된다. 그러나 압살롬은 다윗의 왕위를 찬탈하려는 무서운 음모를 하나하나 실행해 나간다. 이를 위해 압살롬은 아침 일찍부터 성문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다가 소송문제로 성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는 자애로운 재판관인척 행동하면서 민심을 사로잡으려 하였다. 민심을 다윗으로부터 이반시킨 압살롬은 부왕의 신하였던 책사 아히도벨과 함께 2백 명의 군사를 규합하여 예루살렘으로 진군하였다. 노쇠한 다윗은 10명의 후궁만을 남겨두고 가족들과 함께 왕궁을 황급히 떠나 유다광야로 도망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정면 도전한 모반이 오래갈 수 없는 법. 다윗과 그의 백절불굴의 용장들의 반격으로 압살롬과 그의 군사들은 지리멸렬하게 된다.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도망가다 상수리나무 가지에 그의 뛰어난 용모를 상징하는 머리털이 걸려 공중에 달려 있다가 요압과 그의 일행에 의해 살해된다. 그의 이름 속에 놓인 뜻처럼 '샬롬' 즉 평화의 삶이 아닌 형제의 피를 흘린 복수와 아버지 다윗을 향해 칼을 겨눈 모반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압살롬은 결국 파멸의 길로 치닫게 된다. 권력욕에 눈멀어 인간의 기본적 도의마저 저버린 압살롬의 비참한 최후를 당연지사라 생각하면서도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한 여운이 머릿속 잔상이 되어 맴돈다. 권좌를 향한 압살롬의 탐욕은 죽어서 멈추었으니 말이다.

2010-02-16

[성서인물열전] 삭개오,'지금 당장 구원'의 산증인

1970년대 재개발사업으로 판잣집에서 마지막 밥을 먹던 가족 위로 철거용역들의 포클레인이 내리 찍히는 현장을 목격한 조세희 씨가 미친 듯이 써내려가 태어난 작품이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었다. 이 작품을 읽을 때마다 신약시대 민초들의 삶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신약시대 로마의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에서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이 내는 세금은 전체 수확된 농산물의 약 35%에 달했다고 한다. 허리가 휠 정도의 과중한 세금이었다. 더군다나 로마에 세금을 내지 않을 경우 그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이러한 열악한 경제상황 속에서 로마 총독으로부터 조세 징수를 위탁받은 산헤드린(유대의 최고 재판 기관)이 세금 징수를 위해 고용한 세리는 대부분 징수 과정에서 폭리를 취한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기에 세리는 동족들의 고혈을 짜는 로마앞잡이요 죄인의 대명사처럼 불려졌다. 신약성서에서 세리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데 그는 '순수'라는 이름의 뜻을 지닌 삭개오였다. 예수 만난 뒤 삶이 변화된 많은 사람들에 관한 소문을 들어온 터라 여리고 지역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그 동네에 예수님이 지나신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 분을 먼발치에서라도 보기위해 체면불고하고 길가 뽕나무에 올라갔다. 세리장으로서 많은 부는 축적했지만 그의 마음은 허허롭기 그지없었다. 그의 이름이 지닌 뜻대로 순수한 삶을 살기를 원했지만 삭개오는 동족들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으니 그인들 그렇게 살고 싶었을까. 지나가시던 예수님은 잠시 발길을 멈추고 뽕나무에 있는 그를 쳐다보며 말씀하신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이 방문했을때 삭개오는 뜻밖의 고백을 하게 된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그리고 뒤이은 예수님의 선포.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그렇다 구원은 오늘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물질의 신 맘몬에게 놓임 받은 삭개오처럼 구원은 우리를 참사람 되게 하지 못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놓임 받는 것 또한 구원이다. 가끔씩 하늘을 쳐다보다가도 이 발밑 어지러운 세상에서 참사람으로 살지 못한 채 허허롭게 살아가는 우리 자신도 돌아볼 수 있기를.

2010-02-02

[성서인물열전] 아모스, 광야에서 홀로 무거운 짐 진 자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이 전하라 하시는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면 화(禍)가 도로 자신에게 미치는 시대의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 하나님을 대변하여 하나님의 뜻을 어그러지게 하고 역행하는 세태를 고발하고 나아가 심판을 선언하는 이들. 그들이 누구인가? 예언자들이다. 그러기에 '예언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나비'는 미래의 될 일을 미리 고지(告知)하는 그런 일보다는 현재의 죄악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돌이키지 않을 경우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할 것임을 알리는 시대의 소리통이었다. 이들 가운데 "무거운 짐"이라는 이름 뜻을 지닌 예언자가 있었으니 그가 아모스이다. 아모스는 기원전 8세기에 남 유다 남방 드고아 출신 농부로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서 여로보암 2세 치하의 북 이스라엘로 올라가 그곳에서 활동한 예언자였다. 주변 강대국들이 위축된 탓에 기를 펴고 살면서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북 이스라엘의 부호들은 가난한 동족들을 괴롭히고 사치와 향락에 빠져 하나님 백성의 길에서 이미 떠났다. 한편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을 면죄부 삼아 형식적이고 자기기만적인 예배에 열중하고 있었다. 부와 권력을 잡은 이들이 돌이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곧 임할 것임을 아모스는 전해야 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과 유다뿐만 아니라 주변 여러 나라의 죄악을 고발하고 살진 희생으로 드리지만 형식적인 예배를 비판하고 빈민의 머리에 있는 티끌까지 탐내는 부호들을 가차없이 질타하였다. 그뿐인가. 하나님이 기근을 이 땅에 보내신단다. 그러나 그 기근은 고갈된 양식으로 인한 것이 아닌 풍요 속의 빈곤처럼 찾아온 말씀의 기근이었다. 사탕발림의 말씀은 도처에 넘치지만 정작 하나님의 말씀이 고갈된 기근으로 인하여 정치 종교 도덕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단다. 그러나 예언자는 광야에 홀로 선 존재인 것을. 목청껏 외친 아모스의 목소리는 허공을 맴돌 뿐 죄악에 찌들대로 찌든 그들의 양심에 공명(共鳴)되지는 못하였다. 결국 그는 추방당하고 만다. 그가 전한 예언의 말씀은 그로부터 60년 후에 강대국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응하였다. 아모스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귀 닫고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역사의 흐름에 눈먼 채 자기 길 갔던 민족의 비극적 운명이었다.

2010-01-26

[성서인물열전] 야베스, 기도로 운명을 바꾼 사람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란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역대상 4:10) 독일 태생으로 영국에서 고아들을 위해 사역하면서 5만 번 이상 기도의 응답을 받은 죠지 뮬러처럼 야베스는 기도로 자신의 운명을 바꾼 성서 속 기도의 사람이었다. 야베스는 유다 자손으로 갈렙 지파의 유력한 족장의 아들이다. '야베스'라는 이름에는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셨다"라는 뜻이 있다. 아마도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 잊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해 아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으리라. 태어날 때부터 고통 가운데 태어났지만 야베스는 기도로써 자신의 운명을 바꾼 인물이었다. 본래 자녀의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는 것인데 이 '야베스'란 이름을 지어준 이가 어머니였다는 것은 어떤 재난으로 아버지를 잃게 된 야베스의 슬픈 가정사를 반영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어머니가 그의 이름을 '야베스'라 한 것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그의 가정에 엄습한 고통의 현실을 극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과 기쁨으로 나아가기 위한 믿음에 근거한 바람이 그 이름 속에 담겨 있다 하겠다. 야베스와 그의 가정에 드리운 재난을 극복한 야베스의 기도는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암울한 상황을 살아가던 당시의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으리라. 개인이든 민족이든 고통과 환난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예를 우리는 인간사에서 여러 번 목도하지 않았는가? 기도의 사람 야베스처럼 눈물의 기도를 뿌리며 두만강을 건너 북녘 땅으로 들어간 한인 선교사가 있다. 이곳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북한의 참혹한 인권 문제를 전 세계에 환기시키기 위하여 복음의 사신(使臣)으로 작년 25일 성탄절에 직접 북한에 들어간 로버트 박 선교사의 이야기는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도전과 충격을 주었다. 어쩌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박선교사는 평상시에도 북한 동포와 탈북자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눈물로 기도했다 한다. 구약의 야베스의 기도처럼 그의 기도와 행보(行步)로 억압과 속박의 족쇄가 차여진 그 동토의 북녘 땅이 복음으로 해동(解凍)될 수 있기를 새해에 소망한다.

2010-01-12

[성서인물열전] 바디메오, 길 없는 길을 간 제자

모국에서 자살하는 인구의 비율이 올해 10만 명당 24명이었다는 보고를 들은 적이 있다. 올해는 유난히 우리 주변에 살 '길'이 막막해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길'이 없음은 희망이 보이지 않음이다. 여기 밑바닥 인생에서 '길'을 보고서 그 '길'로 나아간 이가 있다. 그는 희망으로 가는 출구가 없어서 여리고 성문 앞에서 날마다 손을 벌리고 구걸로 연명하던 걸인의 길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그 '길'로 들어선 바디메오다. 여리고 성문 앞에서 구걸하던 소경 바디메오가 목소리 높여 외친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변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恨)서린 절규를 예수를 향해 외쳤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사회 밑바닥에서 온갖 푸대접과 멸시를 받고 사는 그에게 예수님은 희망을 의미했다. 바디메오에게 예수님은 물으셨다.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그에게 시력의 상실은 희망 없음이었다. 더군다나 재앙이나 질병은 하나님의 응징이라는 인과응보의 신학에 근거한 당시 유대의 종교적 현실을 고려한다면 그에게는 육체적 장애보다는 사회적 편견이 더 견디기 힘든 질곡이었을 것이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꼴찌가 일등 되고 일등이 꼴찌가 되는 아이러니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바디메오가 그런 경우이다. 그는 예수님의 치유로 육안(肉眼)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영안(靈眼)이 열려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길을 따라 나섰으니 말이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간단히 끝난다. 이후 그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헬라어 '아콜루데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스승의 가시는 길을 알고서 제자로서 그 길을 간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시력회복의 기적보다는 그 짧은 만남으로 걸인이었던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건이 더 큰 기적이 아니겠는가? 그러기에 신앙은 얼마나 오랫동안 믿었냐는 '양'의 문제가 아닌 하루를 살아도 진정한 제자로 살아가는가 하는 '질'의 문제이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볼 수 없는 '길'을 찾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바디메오는 우리가 갖고 있는 일등 신화와 양으로 가치를 매기는 통념을 깨고서 예수께서 가신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길을 좇아간 진정한 제자였다. 지금은 바디메오처럼 다시 한 번 '헝그리' 정신으로 일어나 2010년을 희망으로 맞이해야 할 때이다.

2010-01-05

[성서인물열전] 하와, 산 자의 어머니

"신이 남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는데.'라고 말한 뒤 여자를 만들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로저스(Adela Rogers)가 한 말이다. 하긴 생물학적으로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우성이요 평균수명이 7~10년 더 길다고 하니 진흙으로 빚은 최초의 인간(아담)과 그의 가슴에서 취한 갈빗대로 만들어진 여자(하와)는 이미 운명이 처음부터 갈린 것이 아닌가? 진흙과 갈빗대 어느 것이 강한가? 하나님은 최초의 인간인 아담의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드셨다 했다. 여기서 '돕는다'는 말은 '구해낸다'는 뜻의 '에셀'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그의 고독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여자를 만드셨다. 그래서일까 여자는 남자 없이 살 수 있어도 남자는 여자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여자는 남자보다 호기심도 강했다. 금단의 열매를 따먹게 되면 죽게 된다는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뱀의 유혹에 넘어가 그것을 먹었으니 그녀의 호기심은 죽음보다 강했던 모양이다. 주체 못 할 강한 호기심 때문에 열지 말라는 제우스의 명령을 잊은 채 그가 준 상자를 연 나머지 이 세상에 온갖 재앙과 질병을 가져온 최초의 여성 판도라처럼. 인류 최초의 원죄는 호기심이 발동한 나머지 금단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탐심이었다. 그 탐심 때문에 인류는 온갖 불행을 자초하기도 하지만 한편 쉼 없이 화려한 문명을 일구어 내기도 하였다. 하와는 금단의 실과를 먹어 죄와 죽음의 암운을 인류에게 드리웠지만 성경은 그녀를 죽은 자의 어머니가 아닌 '산 자의 어머니'로 기록했다. 하와는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연약한 그릇'에서 질긴 탯줄로 인류의 역사를 지속시키기 위해 생명을 부여하는 강한 어머니가 되었다. 그러기에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 했다. 뱀이 아담을 제쳐두고 생명의 기원이요 인류의 미래를 자궁(子宮)에 품은 하와를 유혹의 대상으로 선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겠다. 열린 판도라 상자에서 온갖 재앙이 소용돌이치듯 나온 후 마지막으로 희망이 나온 것처럼 '하와'라는 이름이 암시하듯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결국 '생명'인데 무통(無痛)이 아닌 극심한 진통 후에 오는 생명이다.

2009-12-29

[성서인물열전] 야고보, 격동기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

2002년경 야고보의 유골함이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유골함의 표면에는 아람어로 "야고보 요셉의 아들 예수의 형제"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만일 이것이 위조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의 유골함일 것이며 예수님의 실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고고학적 증거가 될 것이다. 이 유골함의 진위여부는 아직도 공방 중에 있지만 우리는 1세기 격동기를 헤치고 갓 부화한 예루살렘 교회를 이끈 야고보에 대한 관심을 다시 갖게 되었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는 7명의 형제들이 있었다. 예수님 바로 밑의 동생이었던 야고보는 예수님의 살아생전에는 그 분을 메시아로 믿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부활 후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首長)이 되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지상교회에 그 흔적을 남긴 인물이었다. 야고보가 이끈 교회는 유대교의 메카이자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에 위치해 있었기에 율법의 날 선 유대교와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외친 바울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현실에 놓여 있었다. 1세기 격동기에 유대교의 모태에서 서서히 새 시대의 종교로 태어나 부상한 기독교의 한 축을 이끈 야고보는 바울과는 달리 그리스도 복음의 선포와 함께 율법을 준수할 것을 가르쳤다. 그가 남긴 작품인 ?야고보?에서 우리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외치는 그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는 마태복음 ?산상수훈?의 결론부에서 야고보가 전한 유대적 복음의 메아리를 다시 한 번 듣게 된다. 서슬 퍼런 유대교권자들 틈바구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쳤던 야고보는 결국 순교의 제물이 되고 만다.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야고보가 주후 62년 유대교 이단자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었다고 기록해 놓고 있다. 또 다른 전승은 야고보가 성전의 꼭대기에서 내밀쳐져서 바리새인들에 의해 매 맞아 순교 당하였다고 전한다. 야고보는 행함과 믿음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선 경계인이면서 교회정치가로서 기독교를 유대교의 텃밭에서 이끈 위대한 지도자였다. 믿음 있음을 행함으로 보이라고 외치는 야고보의 소리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귀에 더욱 쟁쟁한 이유는 무엇일까?

200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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